6월 편지: 나의 올드 오크

러빙핸즈청소년연구소
20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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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4일 초록리본도서관에서 열리는 특별한 행사 ‘모기영(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 http://cfffe.org/)’에 참석했어요. 어찌어찌하다가 놓친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 상영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1. 켄 로치 감독의 영화들

저는 오래 전 <빵과 장미>를 보고나서 크게 공감했어요. 이어서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몇 개 더 찾아보았어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지미스 홀>, <자유로운 세계> 등 몇 편을 보고 그의 팬이 되고 말았어요. 

켄 로치 감독은 우리가 무시하고 홀대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드러내며 화려한 자본주의의 이면을 받치고 있는 노동시장의 비인간성을 지적해왔어요. 특히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미안해요, 리키>를 보며 주변의 지인들이 겹쳐 보였어요. 평생 성실하게 일하고 검소하게 소비하며 세금도 떼먹지 않고(못하고) 살아온 노동자인데 막상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막막해졌을 때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한국의 다니엘 블레이크들이 있잖아요? 영화 속 리키처럼 이것저것 안해본 일 없는 친구들이 택배 배달원이 되어 몸을 다쳐가며 가족을 먹여살리고, 제 영혼이 병들어가도 어쩔 수 없이 로봇처럼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도록 몰리는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들도 있지요.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외로워하면서 방황 속에 성장하구요. 그렇게 나와, 우리 곁에 있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켄 로치의 영화 속에도 있어요. 


2. <나의 올드오크>

<나의 올드 오크>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에 이은 완결판이자 감독의 은퇴작이라고 해요. 영화의 배경은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섬의 북동쪽에 있는 폐광도시인 더럼Durham이에요. 

왕년에 광산이 잘 될 때는 날렸지만 지금은 쇠락한 칙칙한 도시이죠.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공공기관은 물론 대부분의 식당과 가게들이 문을 닫은 마을에 올드 오크Old Oak라는 작은 펍pub이 겨우 살아 남아있어요. 어느날 마을에 버스가 도착하더니 스카프를 두른 낯선 사람들을 한 무더기 내려놓습니다. 영화 <가버나움>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시리아의 난민들이에요. 

마을 사람들은 팍팍한 삶의 고난을 낯선 이방인들에게 투사해서 이들을 욕하고 괴롭히고 내쫓을 궁리를 해요. 먹고 살기 힘든 게 그들 탓도 아닌데 말이죠. 

와중에 마을 사람 하나가 난민 중 한 사람인 야라라는 사진작가 지망생 소녀의 카메라를 망가뜨리는 사건이 발생해요. 올드 오크의 주인 TJ 발렌타인씨는 안타까운 마음에 야라의 카메라를 고쳐줍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TJ를 비난해요. TJ는 오랜 마을 친구이기도 한 술집 고객들을 외면하기 힘들어요. 그들마저 잃는다면 가게를 닫아야 할 판이니 말이죠. 그러나 난민들에 대한 혐오와 괴롭힘이 지나치다고 생각해요. 원치 않게 ‘우리들’의 마을에 이웃이 된 ‘그들’은 함께 잘 살 수 있을까요? 

혐오와 배제, 증오, 테러가 있지만 한 편에는 만남과 연결이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과 단체들이 난민을 돕기도 하지만, 난민들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로 마을 사람들을 돕습니다. 외롭고 슬플 때 가까운 ‘우리’보다, 낯설은 ‘그들’이 손을 내밀어주기도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가서 야라의 아버지가 시리아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예상치않게도 많은 마을 사람들이 야라네 가족을 찾아와 슬픔을 애도합니다. 가족은 문을 잠그고 살던 어둡고 좁은 집을 나와 현관 밖 마을길에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포옹합니다. 난민 야라의 집 앞은 꽃길이 됩니다. 

수십년째 이어온 마을 축제에서 마을 사람들과 난민들이 함께 거리를 행진합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시리아식으로 만들어 선물한 커다란 깃발에는 ‘용기, 연대, 저항’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렇게 감독은 당부의 말을 남기며 고별인사를 하고 있었네요. 제가 처음 보았던 <빵과 장미>에서부터 관통하는 메시지였어요.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용기.

연대.

저항.



3. “슈크란” 


영화를 다 보고나서 최은 영화평론가님이 설명을 해주셨는데, 마치 족집게 과외선생님처럼 눈이 확 뜨이는 경험이었어요! 

이방인, 난민을 우리의 이웃으로, 아니, 새로운 ‘우리’로 환대한다는 것은 올드 오크의 뒷방을 열어준 것처럼 기꺼이 공간을 마련하는 것, 함께 밥을 먹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었다지요. 

우리 러빙핸즈가 바로 그 환대를 실천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우리 곁에 있는 외로운 아이들을 모시기 위해 초록리본도서관이란 공간을 마련한 것, 멘토와 멘티가 직접 만나서 같이 먹고 놀고 꿈을 찾아가는 긴 여행을 같이 하는 것이 켄 로치 감독이 얘기하고 싶었던 용기, 연대, 저항이 아닐까 싶어요. 

돈이 최고인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저항) 서로 약한 손을 잡는 데(연대)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지요. 그 용기를 내주신 러빙핸즈 멘토, 멘티님들께 감사드려요. 


슈크란! (아랍어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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